본문 바로가기
나의 자서전

31살의 페이지를 넘기며

by 위신 2025. 1. 1.
반응형

31살의 나는

31살의 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24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렇다 할 계획 없이 6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정해진 건 없었지만 6년 동안 반복되었던 일상이 한순간에 바뀐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두렵고, 다른 한편으론 설레었다.

 

퇴사 후, 부지런한 일상을 살아내겠다는 마음과 달리 내 정신력은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매일 운동하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당장 2월에 호주행 비행기 표는 끊어놨지만 이렇다 할 영어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다. '6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는데, 이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않나?' 꽤나 그럴싸한 명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시간들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렇게 2월이 다가왔고 나는 호주에 갔다.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호주는 정말 좋았다. 공기도 좋고 자연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호주는 한국과 다르게 사람들의 일상이 여유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브리즈번이라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브리즈번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거 같지 않았다. 브리즈번에서 다녔던 교회 사람들의 뜨거웠던 신앙 또한 그대로였다. 그게 참 은혜가 됐다.

 

짧다면 짧은 열흘 동안의 호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3월부터는 정말 달라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역시나,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집에만 있으면 생산성 없는 시간만 보낸다는 걸 잘 알기에, 카페를 가든 도서관을 가든 어디든 갔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새로운 동기부여를 주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3월이 끝나갈 무렵, 이전에 한 번씩 저녁 강의를 진행했던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학원에 디자인, 영상을 가르칠 강사가 부족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6개월 정도는 푹 쉬고 싶었기에 7월부터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당장 강사가 급한 학원 사정으로 시간제 근무로 하루에 3~4시간 수업을 부탁받았다. 그것까진 거절하기 힘들어 수락을 했고, 4월부터 6월까진 하루에 3~4시간씩 강의를 하며 돈을 벌 수 있었다. 퇴직금으로도 6개월은 충분히 놀고먹을 수 있었는데, 덕분에 용돈 벌이는 했던 거 같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월이 되었을 때, 2년 정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이별사유는 글쎄, 그냥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서로가 알았던 거 같다.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좋은 이별이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했던 이별 중에는 가장 성숙한 이별이었다. 서로 웃으며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축복해주고 함께 해줘 고맙다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2년의 연애는 마침표를 찍었다.

 

7월이 되고 정규직으로 일이 시작되었다. 시간제 파트타임 근무와는 다르게 서류 작업이 조금 많았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이전 회사에서 거래처와 줄다리기하며 일하던 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이래서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좋은 의미로)

 

한때 선생님이 꿈이었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정말 재밌어보였다. 하지만 당시 내 성적은 초라했고 이루지 못할 꿈처럼 보였다. 그런 내가 강사가 되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 정말로. 

 

강사가 되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강사의 본질이었다. '어떤 강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고 생각보다 답은 금방 나왔다. '수강생을 사랑하는 강사'가 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꿀팁, 노하우를 아낌 없이 나눠줬다. 수강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물론 과정이 쉽진 않았다. 귀찮을 때도 많았고 미룰 때도 많았다.

 

나의 진심을 알아준 덕일까, 나에 대한 좋은 수강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행정 직원분들은 내가 인기강사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수강평이 좋게 달리는 강사는 드물다고 한다. 신기했다. 그저 본질을 열심히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하나님 보시기에 창피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뿐인데, 그것들이 쌓이니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뒤돌아보니 2024년 31살의 나의 삶은 은혜로 가득했다.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이었던 거 같다. 내 뜻대로만 되었던 한 해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한 해였다.

 

반응형